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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생애 이야기 알아보기

by carkacar 2023. 6. 14.

베토벤 사망 후 베토벤의 생애를 다룬 문서 및 논문들이 대거 출판되었습니다. 베토벤의 생애를 영화나 소설로 다룬 작품들도 아주 많습니다. 이렇게 베토벤 생애를 다루는 이유는 베토벤이 위대한 음악가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베토벤의 일생 자체가 매우 굴곡이 있어 극적인 이야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베토벤의 생애를 예술작품으로 평가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베토벤 생애 이야기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1. 베토벤 생애 전기

베토벤은 1770년 12월 17일 쾰른 선제후국의 수도의 본에서 태어났습니다. 풀네임은 루트비히 판 베토벤입니다. 베토벤의 아버지의 이름은 요한입니다. 요한은 어린 베토벤의 재능을 일찍이 알아채고 모차르트처럼 아들을 이용해 돈과 명성을 얻으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베토벤을 아주 폭력적인 방법으로 피아노 연습을 시켰습니다. 

 

1778년 3월 베토벤의 첫 대중 공연회를 열었지만 모차르트만큼 대중들에게 큰 임팩트를 주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음악적 재능은 인정받아 11살 때 궁정음악가 크리스티안 고틀로프 네페에게 음악의 기초를 배웠고 교회의 오르간 보조주자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베토벤은 1784년 쾰른 선제후 구정의 정식 교회 오르가니스트가 되고, 1789년 궁정 교향악단에서 비올라 주자 겸 부지휘자가 됩니다. 베토벤은 이 교향악단에서 당시 궁정에서 연주하던 다양한 오페라를 접하면서 자신의 음악적 세계관을 넓힐 수 있었습니다.

 

1786년에는 귀족가문인 브로우닝 집안 아이들의 피아노 선생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브로우닝 집안의 소개로 평생친구 이자 후원자가 되어주었던 페르디난트 폰 발트슈타인 백작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1792년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른 후 베토벤이 평소 꿈에 그리던 오스트리아 빈으로 떠나게 됩니다. 빈 에서는 저명한 음악가인 요제프 하이든에게 가르침도 받을 수 있게 됩니다.

 

2. 베토벤 생애 중기

1804년에는 베토벤의 음악인생에서 매우 기념비적인 해입니다. 자신의 3대 교향곡 중 첫 번째 작품인 3번 교향곡 영웅과 피아노 소나타 분야의 한 획을 그은 발트슈타인 소나타가 작곡된 것입니다. 영웅 교향곡부터 약 10년간 많은 걸작을 탄생시킵니다. 이후 오페라 피델리오, 괴테의 시에 기초한 에그몬트, 5번 교향곡 운명, 6번 교향곡 전원과 피아노 협주곡 4번과 제5번 황제, 바이올린 협주곡 등 매우 다양한 작품이 탄생하였습니다.

 

나폴레옹 전쟁이 끝을 향해 가던 1814~1815년에는 베토벤의 명성이 절정에 이릅니다. 1813년에는 교향곡 웰링턴의 전승을 탄생시켰고, 1814년 초 독일 해방전쟁이 임박하자 전투 합창가인 게르마니아의 부활을 작곡했습니다. 나폴레옹 군이 라이프치히 전투에서 패배하여 독일에서 물러난 이후인 1814면 11월 29일에는 왕후들을 청중으로 애국적 가곡인 영광스러운 순간을 지휘하였고, 1815년 파리 함락과 나폴레옹 전쟁의 종결시기에는 합창곡 모두 이루어지다를 작곡하였습니다.

 

40대 이후 베토벤은 갈수록 옷차림이나 외모에도 신경을 쓰지 않아 노숙자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는 말이 있습니다. 자제력도 상실해 길거리에서 마구 소리를 지르고 찬물을 얼굴에 그냥 퍼붓고 밖으로 나오기도 했습니다. 

 

베토벤은 작곡가, 음악가의 저작권을 매우 신경 썼습니다. 귀족들이 돈을 아무리 많이 후원하더라도 음악작업에 간섭하면 굉장히 싫어하면 쓴소리를 하였고, 왕족이나 귀족들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베토벤은 신분해방을 주창했던 프랑스혁명을 동경했습니다.

 

이렇게 왕족이나 귀족을 싫어하는 베토벤의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베토벤은 평소 괴테의 글을 좋아하고, 괴테 역시 베토벤의 명성을 잘 알아서 서로 즐겁게 대화하며 친해졌습니다. 하지만 거리에서 오스트리아 황족 일행이 나타나자 괴테는 모자를 벗고 물러서서 고개를 숙였는데 베토벤은 모자를 쓴 채로 고개를 뻣뻣이 들고 황족 일행 사이를 거리낌 없이 지나갔습니다. 괴테가 나중에 베토벤의 행동에 대해 지적하자 베토벤은 황족에게 머리를 숙이고 싶지 않다고 하며 괴테와는 맞지 않다고 말한 후 다시는 만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3. 베토벤 생애 후기

베토벤 생애 후기에도 매우 많은 걸작들을 작곡했습니다. 교향악을 대표하는 장엄미사와 9번 교향곡이 작곡되었고, 피아노 분야에서도 소나타 29~32번, 디아벨리 변주곡과 같은 큰 규모의 작품들이 작곡되었습니다. 이 작품들은 각 음악장르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걸작들이라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또한 현악 4 중주곡이 대거 작곡되었습니다. 사람들은 현악 4 중주곡을 인류가 도달한 가장 위대한 음악의 경지라고 평가하였습니다.

 

베토벤은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도 많은 작품을 구상했습니다. 영국 필하모니 협회가 청탁한 교향곡을 일부 작곡하던 중이었고 레쿠엠과 괴테의 파우스트의 오페라화도 구상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베토벤의 사망으로 인해 모두 구상으로만 끝났다고 합니다.

 

1827년 3월 24일 베토벤은 병자성사를 받고 혼수상태에 빠졌고, 26일 영원히 잠들었습니다. 29일에 빈에서 장례식이 거행되었는데 무려 2만 명이나 되는 시민이 장례식에 참석했다고 합니다. 베토벤의 운구하는데 그중에는 슈베르트도 있었습니다. 슈베르트는 베토벤 장례식날 종일 울면서 아무 말도 못 할 정도로 슬퍼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대단한 음악가 베토벤은 별이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베토벤 생애 이야기에 대해 알아봤습니다.